[특별기고]정득주 동문 기증유물 특별전

관리자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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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학교에서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도에 기증받은 학보  鄭得柱선생의 유물은 도자기가 대부분이며 토기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총 460여 점 중 도자기는 336점에 달하며 기증 도자기는 고려 정자, 조선 분정사기와 백자, 그리고 일제강점하의 청화백자 등 시대별, 종류별로 망라되어 있으며, 고려 자기가 120점, 조선 자기가 134점, 일제강점기의 도자기가 76점 등에 이른다.

기증 고려 자기는 청자가 대부분이며 무문정자, 음각청자, 양각청자, 퇴화정자, 상감정자, 철회정자 등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고려 백자와 갈유는 각각 2점에 지나지 않으나 백자의 경우 매우 귀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정득주선생의 기증도자기에 있어서 특이한점은 이른 시기의 고려 정자가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고려 초기인 10세기 경의 청자완에서부터 10~11세기의 청자대접·접시 등 이른 시기의 유물이 90점 가량 된다. 이로 미루어 대다수의 수장가들이 최전성기의 명품 위주로 수집하는 경향과 달리 선생은 명품 뿐 아니라 말 그대로 오랜 역사를 가진 골동품을 수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선생의 수집 유물의 가치를 더해 준다.

기증 조선 자기 134점은 청자 16점, 분정사기 34점, 백자 79점, 흑갈유 5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증품에서도 고려 청자의 맥을 이은 조선 청자는 예외없이 분정사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분청사기는 상감분청, 인화분청, 귀얄분청, 분장분청이 주류를 이루는데 조화 박지분청이나 철회분청이 전혀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그러나 명문이 있는 인화분청이나 생동감을 느끼게 해 주는 귀얄분청 등은 매우 희소성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또 조선 백자는 순백자, 청화백자, 철회백자, 백자청채白磁춤彩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도자기 76점은 순백자, 청화백자, 칠회백자, 흑갈유黑喝抽 등 으로 구분된다.

고려 청자대접으로 선생의 초기 고려 청자에 대한 안목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들을 소개한다면 한쌍의 앵무문을 내벽의 서로 마주보는 면에 음각한 대접(도1)이라든가 외면에 연판문을 여러 겹 중칩되게 음양각한 대접(도2) 등 을 들 수 있다. 이린 청자는 모두 11-12세기의 전형적인 고려 정자이다. 초기 청자에 속하는 또 다른 유물로 직경이 10cm정도 되는 작은 화형花形전접시(도3)와 청자퇴화화문잔좁磁堆花花 文蓋(도4) 등이 있다. 특히 청자퇴화문잔은 외면 구연부 口緣部에 백토로 단순히 일곱 개의 점을 찍어 꽃모양을 만든 다소 치기어린 독특한 발상으로 장식되었다. 

초기 뿐 아니라 고려 후기의 청자도 다수를 차지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청자인각국화문팔각접시 靑磁印刻菊花文八角?匙(도5,6)가 있다. 이 청자각접시는 손이 많이 가고 정교함을 요구하는 상감문象嚴文 대신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인각문印刻文으로 장식되었고 그릇의 문양장식에도 장식성이 배제되고 단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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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유색抽色이 변색되거나 다소 칙칙해지고 제작수법도 거칠어서 전반적으로 고려 후기 자기에 나타나는 특징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 준다. 기증 도자기 중에는 중요한 역사적 · 미술적 가치를 지니는 명문예銘文例가 몇 점 섞여 있다. 그 중 하나가 ‘契’ 라는 글자가 굽안바닥에 묵서명墨書銘된 청자대접(도7,8)이다. 이 정자대접은 유색이나 형태 및 문양장식으로 보아 중국제가 아닌가 한다.

이 청자대접과 비슷한 중국자기가 한국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데,신안해저에서 인양된 다량의 13-14세기 중국 용천요龍泉窯 계통의 정자들이 그것이다. 이 신안해저 도자기에서도 이와 같이 묵서영이 있는 예들이 있다. 기증 도자기 가운데 전형적인 조선 초의 특징을 보여 주는 유물은 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와 분청상감모란문편병이다. 

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도9)는 내면 구언부 문양대에만 당초문이 흑상감되었을 뿐 다른 어떤 문양도 없다 구연부 네 군데 등간격으로 시문된 당초문은 고려 자기의 꼬불꼬불하고 장식적인 당초문과는 전혀 다른 조선적으로 변모한 단순한 형태이다. 이렇게 간소하게 장식된 조선 초기 청자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유물이다. 

이와 함께 분청상감모란문펀병(도10) 또한 독특한데 이런 양식은 고려 청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형이다. 이 펀병扁騙의 앞뒷면은 편편한 정도가 달라서 한쪽 면은 불룩하게 돌출하고 다른 면은 그보다 약간 납작한 비대칭형이다. 문양도 대담하다. 앞뒷면의 백상감 모란당초문은 그 상감수법이 치졸한 듯하면서도 전면에 걸쳐 거침없이 시문되었다. 이로 인해 이 분청사기펀병에선 소탈하나 자신감있고 당당한 모습이 배어 나온다. 

세련되지 못한 형태나 상감수법,단순한 구도,고려 정자와 비슷한 유약과 태토 등은 15세기 전반기 분청사기의 투박한 멋을 한껏 드러내준다. 고려 말 상감청자에서 조선 초 분청사기로 변모한 특징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증 분청사기 가운데에는 인화문이 전면에 촘촘하고 백토가 짙으며 굽밑바닥에 ‘長興’이라는 관청명이 반듯하게 음각된 귀중한 대접이 있다(도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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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長興庫라는 관청영이 그릇의 내외면에 인각되거나 상감된 예들은 있지만,  이렇게 굽안바닥에 새겨진 예는 매우 드물어서 이 분정 대접의 희소가치를 더해준다. 이 외에도 대접안바닥 중앙에 내섬시라는 관청명을 줄인 ‘f:J廳’이 인각된 영문예도, 있다(도13).  


귀얄분청은 걸쭉한 백토 용액을 귀얄에 찍어 회전하는 물레 위에서 순간적으로 대접의 내외면을 장식하는 수법이다. 이런 수법으로 장식된 매우 독특한 귀얄분정대접(도14)이 기증유물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 귀얄분청은 물레의 힘차고 속도감있는 회전력과 두텁게 입혀진 백토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냈다 뿐만 아니라 가마 안에서 우연히 생긴 크고 작은 흑갈색 철반문이 내외 전면에 불규칙적으로 찍혀 있기 때문에 다른 도자기에선 느낄 수 없는 더욱더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

비록 제작수법이 거칠다해도 백토 귀얄문과 전면에 점점이 찍혀있는 절반문으로 인해 이 귀얄분 정대접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장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귀얄분정은 15세기 4/4분기에서 16세기 중엽까지 주로 제작되었다. 이 때 분정사기는 이미 사양길로 접어 들었지만, 귀얄분청이나 분장분청,철회분청 등의 매우 독특한 분청사기가 유행하였다. 이 분청귀얄문대접은 그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귀얄분청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준다. 
조선시대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백자로서 철회초화문 鐵擔草花文이 소박하게 그려진 백자팔각병白磁八角樞(도15)은 형태와 문앙에 있어서 조선 후기의 도자기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백자팔각병은 높이가 16cm 정도의 아담한 크기로 동체가 팔각형을 이룬다.

이런 각병이나 角?류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시기는 18세기부터이다. 이 팔각병의 비스듬히 처진 어깨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각진 면에 걸치는 부위에는 극도로 추상화된 초화문이 힘차게 그려져 있다. 유색細色은 조선 후기 백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백 색을 띠며 기면에는 군데군데 적갈색으로 변색된 부분이 있다. 이런 적갈색은 가마 안에서 공기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산화醒化되어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이 백자병은, 명품으로 꼽을 수는 없지만, 당찬 형태와 필력筆力있고 추상화된 문양 그리고 부분적으로 변색된 적갈색 백자유 등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조선 후기 생활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유물의 하나이다. 

기증 유물 가운데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조선 말기 백자 제기와 연적, 필세筆洗 등의 문방구류 등이다. 또 생활주변에서 흔히 사용하던 청화백자모란문항아리(도16) 같은 백자는우리에게 친근감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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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원[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문화재전문위원]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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