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문흥동유적

관리자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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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산 89-5번지
조사 기간 : 1992년 7~8월
조사 성격 : 구제발굴(문흥지구 택지 개발공사)

월각산(해발 274m)에서 이어내린 동남쪽 줄기의 서남향 비탈에 위치한다. 그 앞쪽으로는 골짜기에 개간된 논이 펼쳐져 있고 작은 개울이 흐른다. 유적은 1991년 향토문화개발협의회의 지표조사로 고인돌 2기와 경질토기산포지 1개소가 확인되었다. 이후 지역사회의 요청으로 1992년 발굴하였다. 조사 결과 이른바 고인돌은 자연돌(바위)로 드러났고, 경질토기산포지는 삼국시대 전후의 것이 아닌 고려와 조선시대의 생활터전으로 밝혀졌다.
고려시대 문화층에서는 유구는 확인되지 않고 백자·옹기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문화층에선 건물터로 추정되는 적심석·화덕자리 등의 유구와 기와·전돌·분청사기·백자가 확인되었다. 이 건물터는 “성화(成化)”명 기와와 자기를 토대로 1465~1487년의 어느 해에 축조되었고 4대에 걸쳐 130년간 존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중 자기류는 대접·접시·병·잔처럼 작은 그릇이고, 질그릇과 옹기는 단지·항아리·시루 모양의 중대형 그릇이다. 분석에 따르면 자기류는 광주 충효동이나 화암동 일대에서 생산되었고, 질그릇·기와·전돌은 문흥동 주변에서 제작되었다.
이로써 조선시대 전기의 건축자재와 그릇갖춤새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얻었다. 또한 유적은 상당한 생활 수준을 가진 사람이 살았던 터전이었으며 이들의 살림살이를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