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조대신문 총선특집 <키워드로 총선 읽기① ‘18세’> 다가오는 선거, 멀기만 한 선거교육
조대신문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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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투표 대학생 “학교에서 선거 가르쳐줘야…” 현직 교사 “비판적 정치교육이 미래”
올해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일까. 3월 현재 우리나라를 뒤덮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를 제외하면, 4월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닐까. 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선거운동을 최소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보수 정당들의 연합체인 미래통합당이 출범하고 ‘한국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등 갖가지 변화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선을 받는 선거가 됐다.
이번 총선에서 대학생에게 가장 와닿는 변화는 투표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생일이 지난 고등학교 3학년생과 대학 신입생 모두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조대신문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처음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을지 궁금했다. 전남 영광에서 김성우(18, 조선대 글로벌비즈니스커뮤니케이션학과 입학), 강민혁(18, 원광대 역사교육과 입학) 군을 만났다.
선거제도 가르치지 않는 학교
두 학생은 하나같이 코로나19로 인해 새내기 배움터를 비롯한 신입생을 위한 행사가 취소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새터에서신입생과 선배를 여럿 사귀고 싶었어요.” 성우 군의 말이다.
두 학생에게 이번 선거에 관해 물어봤다. 생각보다 관심이 많아 보였다. “우리도 이번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학교에서 따로 선거교육을 해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2020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분야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 했냐는 질문에 성우 군은 “‘사회문화’와 ‘한국지리’를 선택했다”고 답했다. ‘한국지리’는 학교에서 정해줬고, ‘사회문화’는 자기가 관심 있어서 선택했다고. ‘사회문화’와 ‘한국지리’는 2020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주로 선택되는 과목으로서 각각 선택률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법과 정치’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서”, “반 친구들이 선택하지 않아서”, 그리고 “내용이 어려워서”였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정치와법’ 학습을 꺼리고 수능에서도 선택되는 경우가 적어서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조대신문이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일반계 고등학교 2018~19학년도 교육과정을 조사한 결과, ‘정치와 법’ 과목이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선택 과목으로 지정된 학교는 124개교 중 98개교였다. 광주광역시는 31개교 중 27개교, 전라남도는 93개교 중 71개교가 ‘정치와 법’을 선택 과목으로 지정했다. 사회탐구 분야의 선택 과목은 수능에 응시하는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하기 때문에, 선거교육이 포함된 ‘정치와 법’은 다른 과목에 비해 선택하는 학생이 적을 수밖에 없다.
정치를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학생
두 학생의 정치 관심도가 궁금했다. 민혁군은 정치보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다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현대 정치사에도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학교에 ‘정치와 법’ 수업이 있었다면 흥미롭게 들었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한국사’ 수업덕에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역사교육과에 진학했다. ‘정치와 법’ 수업이 있었다면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들은 학교 수업의 부재로 인한 정보 부족을 어디에서 채울까. 민혁 군은 정치에 관한 정보들을 신문을 통해 얻는다고 했다.“정치인 아무개가 어떤 잘못을 했고, 그로인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빠삭하죠.” 그러나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총선 투표용지가 두 개인 이유에 대해서도 민혁 군은“알고는 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고 답 했고, 성우 군은 “이제야 알았네요”라며 머쓱한 듯 웃었다.
지역 선거구 획정에 관한 질문에도 두 학생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비례대표와 같은 정치 용어에 관한 정보들을 자신들이 인터넷에서 찾지 않는 이상 배울 곳이 없어요.” 두 학생의 공통된 고민이다. “이런 정치 용어를 수업에서 알려준다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두 학생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고등학생이 정치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스스로 정치에 관해 공부하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정치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모의투표 관례… 한국은 금지
정치교육이 없다시피 한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정치교육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은 4년마다 실시하는 국회의원 선거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데, 중고등학교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모의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학생회에서 정당 관계자를 초청하거나 정당에 가입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유세를 벌이는 일도 흔하다. 핀란드에서도 모의투표를 주요 교육과정의 하나로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 초등학교의 모의투표 결과를 미국 CBS 등과 같은 주요 언론사에서 단골 뉴스거리로 삼는다. 이 학교는 모의투표를 1968년부터 48년 동안 진행했는데, 그 결과가 실제와 어긋난 적이 없었기에 ‘족집게 선거’라고 불린다.
스웨덴과 미국에서 모의투표를 선거교육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모의투표를 진행한 교사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모의투표 교육을 하기 위해 교장에게 문의했다. 그러나 교장이 끝내 허가하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선거 수업을 진행한 어느 고등학교 교사는 큰 봉변을 당했다. 이 교사는 ‘정치와 법’ 수업 중 선거를 다루면서 만일 학생들이 유권자라면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묻는 수행평가를 진행했다. 그러나 선거에 대한 학생의 이해를 돕는 수행평가로 인해 그는 교육청과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조사에 시달렸고, 선관위가 고발해 검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검찰이 무혐의 처분했지만, 그는 이때의 경험으로 다시는 모의투표 같은 계기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모의투표를 금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대신문이 광주선관위에 문의한 결과 “학교·단체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 따라 모의투표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을 위한 선거교육을 선거운동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 “선관위의 모의투표 금지 조치는 헌법이 보장한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치교육 필수… 선진국 교육 배워야”
조대신문은 고등학교에서 일반사회를 가르치는 교사를 만나 속사정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15년간 일반사회 영역을 가르친 한신(43) 교사에게서 고등학교 일반사회 과목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사 생활 15년 중 5년 동안 ‘정치와 법’과목을 가르친 한 교사는 ‘정치와 법’이 “민주시민성 함양을 위해 필요한 수업이며,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예산 부족과 교사 정원 문제로 학교당 교사가 충분히 확보되지 못해 과목을 개설하기 힘든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재직 중 정치교육을 위해 모의투표를 하기도 했다는 한 교사는 “정치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기에 가상 정당을 만들어 직접 공약을 발표하거나 유세하는 등 선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정치는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라며 “초등학생도 교내 자치 활동을 통해 스스로 정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교육의 한계에 대해 한 교사는 “우리나라가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정치적 대결이 극단화하면서, 교육이라는 공간에서나마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현재는 과도기에 접어들었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교육에서 벽은 분명히 존재하고 무시할 수 없으니 현재의 흐름에 맞춰 정치적 중립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학생에게 올바른 정치교육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 교사는 “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정치교육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전보다는 낫지만 더욱 개선돼야 한다”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교육의 미래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처럼 현실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정치교육이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도 국민입니다
“선거에 관한 정보 제공은 학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거에 참여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민혁 군의 마지막 한마디이다.
황치웅 통신원
안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