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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별
총관리자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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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넓어야만 별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로구나”
미술체육대학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황중환 교수
이번 겨울이 지나면 어느새 우리 대학에 부임한 지 만 10년이 넘어가게 된다.
지금은 광주 시민이 되어 광주와 전라도 구석구석까지 알게 되었지만 처음 우리 대학에 부임했을 때는 적응하는 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주위에서 들리는 전라도 억양도 낯설었고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어떤 때는 모든 걸 그만두고 다시 만화가로 돌아가겠다거나,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직업과 터전이 바뀌면 누구나 적응기가 필요한 법이겠지만 유난히 내 적응 속도가 더뎠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조금 일찍 교수가 되어 이런 경험을 미리 할 수도 있었다.
2004년 우리 대학 공채에 지원했다 무산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교수가 되었더라면 교육자로서 경험을 일찍 쌓을 수 있었고 한 살이라도 젊으니 적응이 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일찍 교수가 되지 않은 덕분에 다른 직업을 경험하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나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의미 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당시 공채는 무산되었지만, 조선대학교에서 초빙교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만화가이자 동아일보 기자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라 늘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강의 경험도 쌓을 겸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는 고속철도가 없어 이동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요즘처럼 저가항공도 없던 때라 강의료는 대부분 교통비로 쓴 것 같다.
그래도 먼 거리를 오가며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강의시간에 만나는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조선대학교가 한국 최초의 미술대학이 만들어진 유서 깊은 곳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수업태도도 좋았고 서울 여느 대학 학생들과 비교해 작품수준이 괜찮았다.
수업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학생들은 늘 더 알고 싶어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해 질 무렵 공항으로 향하는데 어느 저수지 위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만났던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눈빛 같았다.
그때 그 느낌을 기록하고 다음 날 신문에 만화로 그렸다.
나중에 우리 대학으로 이직하게 된 이유에는 그 학생들에 대한 좋은 기억 덕분이다.
그때 가르쳤던 학생들은 사업가도 되고 작가도 되고 대학교수도 되었다.
엊그제는 올해 졸업생이 카카오에 웹툰 연재를 시작할 거라는 기쁜 연락을 받았다.
요즘은 높아진 한국문화의 위상 덕분인지 독일, 콜롬비아, 몽골,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대학원생들이 한국인 학생들과 수업을 받는다.
이들의 수준도 높은 편이어서 오히려 교수인 내가 공부할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다.
이들이 우리 조선대학교에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호수에 뜬 별 같다.
세상 모든 존재는 별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별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