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재난인문학이 필요한 두 가지 이유
조대신문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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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인문학이 필요한 두 가지 이유
1. 리베카 솔닛은 자본주의 자체가 ‘지속중인 재난’이라고 말한 바 있지만(<재난 속의 희망>), 자본주의라는 재난 속에서, 그것으로도 모자라 매번 새로운 추가 재난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재난이란 무엇인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기본법)에 나와 있는 법률적 정의에 따르면 재난은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는 국민이거나 국가다. 그중 국민의 피해는 세 층위에 걸쳐진다. 생명, 신체, 재산. 즉, 죽거나, 다치거나, 손해를 보거나.
아마도 생명, 신체, 재산이라는 세 개념은 피해 정도의 단계를 의미하기도 하리라. 그러니까 사망, 상해, 손해 순으로 위중한 피해라는 것이겠다(이 셋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의 순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빠진 것이 있지 않은가? 왜 신체인가. 다시 말해, 왜 정신이 아닌가. 이 경우 신체는 정신을 포함하는 개념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난 피해 산정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는 카운트되지 않는 것인가? 이 누락은 사소해 보이지 않는다. 재난의 정신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거나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다. 정신적 피해? 인정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 15조 2항에 따르면 재난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심리지원’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설치 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15조가 이렇게 개정되고 시행령이 마련된 것이 작년 6월이다. 재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고 구체적 제도 마련이 시작된 것이 이렇게나 최근의 일이란 뜻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정신적 피해들이 부정당해 왔을까. 재난의 정신성, ‘재난인문학’이 탐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2. ‘기본법’은 재난의 종류를 나누는 관점도 알려준다. 2004년에 ‘기본법’이 처음 제정될 당시 ‘재난’은 세 개의 목(目)으로 나눠져 있었다. 가)태풍·홍수·호우·폭풍·해일·폭설·가뭄·지진·황사·적조,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자연현상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나)화재·붕괴·폭발·교통사고·화생방사고·환경오염사고, 그 밖에 이와 유사한 사고로 대통령령이 정하는 규모 이상의 피해, 다)에너지·통신·교통·금융·의료·수도 등, 국가기반체계의 마비와 전염병 확산 등으로 인한 피해.
이 뼈대가 크게 달라진 것은 2013년 8월 6일 개정안에서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채택되면서다. 자연재난은 자연적 원인(재해)을 갖는 전통적 재난이다. 사회재난은 사회적 원인(사고)을 갖는 현대적 재난이다. 이제 ‘가’ 항목은 ‘자연재난’이라는 당연한 이름을 달았고, ‘나’와 ‘다’는 ‘사회재난’으로 통합됐다. 애초 ‘다’에 속해 있던 전염병이 (‘가’가 아니라) ‘나’와 통합되면서 사회재난으로 분류됐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만하다. 전염병의(그리고 감염병의) 사회적 성격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재난이 자연적 원인을 갖는다는 말은 자연의 원인은 자연이라는 동어반복적 진술이다. 원인이 없다는 말과 같다. 그 틈에서 창궐하는 것은 가짜 원인을 상정하고 재난을 그 원인에 대한 응징으로 간주하는 유사 종교적 서사들이다. 사회재난은 ‘사고’로 시작되어 ‘사건’으로 끝난다. 사회적 시스템의 결여, 모순, 적대를 가시화하는, 즉 진실을 계시한다는 의미에서의 ‘사건’이다. 사고로 축소하려는 힘과 사건으로 확대하려는 힘이 재난을 두고 다툰다. 자연재난에 인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이비 서사와 맞서면서 사회재난을 사건화하는 급진적 서사를 개발하는 것, 이것도 재난인문학의 임무다.
신형철 교수
문예창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