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일기] 혐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대신문
202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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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매일 아침 입을 옷을 고르지 못하는 결정 장애가 있다. 아직 패션을 잘 모르는 패린이라 여러 코디를 참고해서 옷을 고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섰다. 기껏 간 음식점에는 부모님과 함께 온 잼민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다녀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래서 조용한 노키즈존(No Kids Zone)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문장에서 혐오 표현은 몇 개일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혹은 알고도 모른 체하며 혐오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비속어, 어른보다 부족한 어린이를 의미하는 O린이, 개념 없는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말인 잼민이, 답답한 상황에서 병에 걸릴 것 같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발암, 전라도 사람들을 조롱하는 라도, 7시 등은 밈 혹은 유머로 소비된다. 어린이를 어린이라는 이유로 특정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 역시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고 해서 사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모른 채로 계속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잘못됐다. 비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병이 있는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마음껏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 그들이 혐오 표현에 대한 불쾌감을 보였을 때 즉시 사과해야 한다. 혐오 표현이 불편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내비쳤음에도,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라거나 진지‘충’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주 사용하는 혐오 표현을 다른 단어로 대체한다고 해서 우리가 피해 보는 것은 없다. 혐오 표현을 들을 당사자를 생각해서라도 혐오 표현을 줄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이 사회에서 배척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배워야 하며 말을 뱉을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혐오를 정의감으로 착각하거나 유머로 소비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군가를 혐오할 자격이 없으며, 혐오 받을 이유 또한 없다.
정민주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