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편리함의 아이러니
조대신문
2024-03-04
13
편리함의 아이러니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의 과학기술자들은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해 왔다. 그 결과 먼 거리를 보다 빠르게 이동하고, 정보를 손쉽게 습득하게 되었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녔던 1990년대만 해도 논문을 구하려면 서울의 큰 도서관을 방문해 직접 논문을 복사해야 했다. 경비 절감을 위해 완행열차를 타고 송정리역에서 저녁을 먹고 비둘기호를 타면 날이 밝은 후에야 용산역에 도착했고, 도서관에서 필요한 논문을 찾아 직접 복사하다 보면 날이 저물었다. 지금은 내 연구실에서 무료로 1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그렇게 힘들게 치른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인류의 편리한 삶을 위해 혁신을 거듭해 온 덕분이다.
하지만 기술문명 덕분에 누리는 편리함은 우리 삶의 질을 떨어트리기도 하고, 병들게도 한다. 우리 학교 정문에서 본관까지 걸어서 20분 걸리지만, 교내 버스나 킥보드를 이용하면 오 분 안에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빨리 간 만큼 잃게 되는 것도 많다. 걸어서 본관에 오르면 교정에 핀 갖가지 꽃을 감상하고 맑은 공기를 쐬며 마음의 때를 벗길 수 있고, 단단해진 종아리 근육은 혈액순환을 좋게 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살도 뺄 수 있기에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 MZ세대의 건강을 위협하는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우울증 등의 원인도 기술문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한몫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만성질환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불편한 삶을 영위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편리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는 많다. 스마트폰이 그렇다. 우리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온라인에 접속되어 사는 것도 모자라 여가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에 접속한다. 해외여행 중에도 풍경보다는 스마트폰을 보고 다니고, 캠핑장에서까지 스마트폰을 이용하며 지낸다. 이렇듯 삶에서 스마트폰의 노예로 전락하면 여가 시간에도 에너지 충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럴 때 이 신박한 발명품은 우리 건강을 망가트리는 해로운 도구일 뿐이다.
스마트폰 과다 사용은 인간관계도 단절시킨다. 요즘엔 무선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섬처럼 고립되어 지낸다. 그렇다 보니 함께 사는 가족이나 어울려 지내는 친구가 겪는 고통을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인간관계의 단절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수렁에 빠트릴 수 있다. 언젠가는 나도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병들어 고통받다 죽기 때문에 남의 도움 없이는 삶을 마감할 수 없다. 이렇듯 인간은 불쌍하고, 나약한 존재이므로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하지만, 스마트폰에 제압당한 세상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그러면 편리함을 위한 발명품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불편하더라도 절제하며 이용하는 것이 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불편을 감수하고 살려는 의지력이라고 하겠다. 모두가 기계문명에 의존하며 살고 있으므로 절제하면 그만큼 불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료가 대학 교정에서 킥보드를 타고 가자고 할 때 나는 걸어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의지를 지녀야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챗GPT 같은 인공지능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욕구를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건강도 좋아지고, 뇌의 퇴화를 막아 치매 예방에도 도움 된다. 그렇다! 편리함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불편을 감수하는 삶을 추구해야 미래의 행복이 보장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편리함의 아이러니다.
자유전공학부 김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