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 누군가에겐 당연한 세상
조대신문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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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당연한 세상
100년 전 조선시대 여성들은 배움의 기회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서 모임을 꾸렸다. 가사 노동에 익숙해진 여성들이 한글 창제 이후 평등한 언어 위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정점이 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부터 였다. 일본에 진 빚을 갚아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한 공론이 형성됐을 당시 집회에서 제시한 보상금 마련 방식으로는 3개월 간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그 돈을 모은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담배는 남성들만 향유하는 기호품으로써 이러한 결정은 남성만 국채보상금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여성 배제 논리에 격분한 여성들이 일어나 여러 단체를 설립해 여성들 또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취지서를 발표했고, 이 시기에 생겨난 여성 단체는 30개가 넘었다.
많은 시간 동안 만들어진 여성 공론장을 시작으로 여성 대학은 출발했다. 이름만 남녀공학인 남학교에 가지 않아도, 양성평등이라고 외치는 사회 안에서 대부분의 임원이 남성이어도, 여성 대학 안에서만큼은 이러한 규범에서 자유로움을 얻었다. 공용화장실에 구멍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밤늦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은 삼가야 하며, 때론 아무 이유 없는 폭행을 당하는 세상은 당연하지 않다. 이를 알게 되는 것은 균형이 흐트러진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시초로써 여성 대학은 기능한다. 사회인이 되기 전 여성들로 가득하고 서로가 안전을 지켜주는 세상 속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당연하게 누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에 기울어진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거듭해서 얻어낸 산물을 누구나 배움의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이유로, 떨어지는 학령인구 문제로 여성 대학을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단순히 공학 전환이 학령인구 감소에 있어 당장 나은 대안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태임에도 그저 여성 대 학만 문제시 삼는 건 되려 역차별이 아닐까.
수많은 투쟁의 결과를 여대 무용론에 마주 선 이유로 비논리적인 혐오 담론을 수용하는 것은 다시금 과거 지향점으로 가는 길 일뿐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세상이 다른 이들에겐 투쟁과 시위 끝에 겨우 얻어낸 노력의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양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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