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진실

조대신문

2026-01-26

9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진실


▲역사왜곡 현장 탐방 캠페인 포스터 (출처: 5.18기념재단)


▲‘5·18 역사 왜곡 현장 탐방’ 참여자 단체 사진.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정성일 (사)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이 박준병의 묘 앞에서 해설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의 장군 1묘역으로 향하는 길


“국가 폭력 가해자들을 파묘하라! 파묘하라! 파묘하라!”


지난해 11월 29일, 5·18기념재단은 국립대전현충원 내 신군부 인물의 안장 실태와 공공 기억의 왜곡 구조를 직접 확인하고 논의하는 ‘5·18 역사 왜곡 현장 <국립 대전현충원> 탐방’을 진행했다.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오월어머니집 ▲전남대5·18연구소 등 단체와 시민을 비롯해 언론사까지 30여 명이 참여했고, 조대신문도 이들과 함께 역사 왜곡 현장을 눈과 귀에 담았다.


국립대전현충원

1979년 착공해 1985년 준공된 국립대전현충원은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자리 잡고 있다. 현충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현충탑으로 통하는 현충문이다. 엄중함에 압도되는 현충문 앞에 선 방문객들은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고 참배를 준비한다. 1983년에 세워진 현충문의 현판은 원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글씨로 적혀 있었지만, 2020년 5·18단체 등의 항의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생전 글씨로 바뀌었다.

대전현충원에는 제5공화국 주요 인사 중 군인 8명, 비군인 7명 등 15명을 포함해 묘소와 유골을 안치한 충혼당까지 총 14만 6,443위가 모셔져 있다. 1980년 당시 광주로 투입된 20사단을 지휘한 박준병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박준병은 5·18 관련 혐의가 아닌 12·12반란 혐의만 다뤄져 무죄를 받았다.


현충원의 펜트하우스, 장군 1묘역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의 저자 정성일 (사)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의 해설을 들으며 장군 1묘역으로 이동했다.

일반적으로 묘비 번호는 사망 또는 이장에 따라 안장되는 순서로 부여되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장군 1묘역에서는 규칙을 벗어난 묘를 발견할 수 있다. 1996년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창국 대장은 1호에, 1986년 안장된 전병수 준장은 장군 1묘역 40호에 안장돼있다. 1호 묘보다 40호 묘가 10년 이상 먼저 안장된 셈이다. 그 이유는 묘역 조성 당시 가장 윗 줄에 1호부터 39호까지를 대장 전용 묘역으로 정한 것에 있다. 4성 장군인 대장들을 안치하기 위해 장성급 묘역을 40호부터 먼저 쓴 것이다. 장창국 대장의 옆인 2호에는 12·12사태 신군부 핵심 세력이었던 유학성이 안치돼 있다. 유학성은 전두환의 육사 선배로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상고심을 위한 대법원 판결 전 사망해 공소권이 사라지며 결국 처벌받지 않았다.


2묘역에서 만난 <서울의 봄>

둘레길을 지나 도착한 2묘역에는 영화 <서울의 봄>의 주인공으로, 전두광(황정민 배우)역의 반란에 끝까지 맞섰던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배우)역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장군이 132호에 안장돼 있다. 장태완 장군은 반란을 진압했다는 이유로 고문받았으며, 감옥을 나와서도 보안사령부의 감시를 받았다. 부친은 자식의 소식에 술만 마시다 세상을 떠났고, 장태완 장군의 아들 장성호는 실종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후 장태완 장군은 심근경색 수술과 폐암 수술을 받으며 고생하다 결국 세상을 등졌다. 더욱 비극적인 일은 힘든 삶을 살다 숨진 장태완 장군의 옆자리를 생전 자신을 도청했던 반란군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반란군은 12·12의 숨은 주역인 하나회 출신 정도영이다. 그는 장태완 장군이 사망하기 이틀 전 사망했다는 이유로 바로 옆에 안장됐다. “장태완 장군과 정도영이 나란히 누워 있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현실”이라는 해설을 듣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분노에 찬 탄식을 흘렸다. 장태완 장군과 함께 반란군을 막으려 힘썼던 김진기 준장도 2묘역 6호에 안장돼있다. 김진기 준장은 <서울의 봄>에서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김성균 배우) 역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그는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고자 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장태완 장군과 정병주 육군 특수전사령관과 함께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했다고 알려져 있다.


존재의 오류

2묘역을 지나고 홍범도 장군의 묘를 마지막으로 답사를 마쳤다. 현충원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잠들어있는 명예 공간이다. 그러나 내란을 주도한 계엄군 지휘관들이 안장돼 있다. 이들이 국가의 성역인 현충원에 안치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 재판 전 사망 등의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란에 가담했더라도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 사망하면 법적으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또,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이후 대통령 특별 사면의 경우로 안장이 허용되기도 한 이유다.


국가 폭력 가해자들을 파묘하라

학창 시절 한국사 교과서에서 작게 다뤄져 있던 역사 현장을 직접 보니 체감할 수 있었다. 국가폭력의 가해자인 내란 가담자와 그들을 막으며 국가를 지키려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 ‘장군’과 ‘영웅’의 이름으로 나란히 안치돼 있는 모습은 황당한 광경이다. 이들이 현충원에 안장되며 동일한 체계에서 기려지는 모습은 ‘누가 진정한 국가유공자인가’라는 역사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훗날 먼 세대에는 이들이 모두 현충원에 묻힌, ‘같은 영웅’으로 여겨질 수 있기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내란 등 국가적 범죄를 일으킨 이들이 사면됐다는 이유로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국가적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예외없이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할 수 있도록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는 등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프로그램 해설을 맡은 정성일 기획홍보팀장은 “2024년에도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것이 안타깝고, (참가자들이) 이곳에 모여주신 것이 정세를 바꾸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많이 알려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박지인 기자

parkjiin3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