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똑똑한 AI 비서가 생긴 뒤, 나의 일이 더 어려워졌다

조대신문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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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AI 비서가 생긴 뒤, 나의 일이 더 어려워졌다


내가 애용하는 ChatGPT의 이름은 ‘치치(ChiChi)’다. 2022년 겨울, Chat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가졌는지 궁금해 점심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해 보았다. 치치는 곧바로 음식을 추천하는 대신 아침엔 무엇을 먹었는지, 예산과 분위기는 어떤지를 되물었다. 질문을 던진 쪽은 나였는데, 어느새 인공지능이 나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단순히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내 상황을 파악해 더 적절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AI가 순식간에 답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도 전문지식은 여전히 필요한가? 그렇다면 교수는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그러나 치치를 쓸수록 답은 오히려 명료해졌다.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전문지식이 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지식과 안목이 필요했다. AI의 답은 매끄러웠지만 늘 정확하지는 않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자신 있게 말하고, 서로 다른 정보를 그럴듯하게 섞기도 했다. 결국 오류를 발견하고 타당한 주장과 그럴듯한 주장을 구별하는 힘은 사용자의 지식과 판단력에서 나왔다. 아는 것이 있어야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고, 무엇이 빠졌는지 발견하며, 그 답을 믿어도 되는지 판단할 수 있었다.

같은 AI를 써도 사용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랐다. 무엇을 묻고 어떤 맥락을 제공하며 답을 어떻게 검토하는지에 따라 수준이 천차만별이었고, 대화가 쌓일수록 AI는 사용자에게 맞추어 갔다. 처음에는 누구나 같은 AI를 사용하니 사람들 사이의 지식 격차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치치를 사용할수록 생각은 달라졌다. 안목을 가진 사람은 AI로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지만, 그럴듯한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AI의 오류까지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새로운 격차는 누가 AI를 가졌는가보다 누가 AI를 어떻게 이끌고 판단하는가에서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AI를 ‘유능하고 빠르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비서’에 비유한다. 리더가 목적을 분명히 정하지 못하면 비서는 엉뚱한 일을 아주 빠르게 해낸다. 반대로 리더가 목적과 맥락을 이해하고 결과를 꼼꼼히 검토할 때, 비서의 능력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보고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논증할지 스스로 정하지 못한 채 AI에 맡기면, AI는 그럴듯하지만 알맹이 없는 글을 순식간에 완성해 줄 뿐이다.

그래서 똑똑한 비서가 생긴 뒤, 역설적으로 나의 일은 더 어려워졌다. 무엇을 질문하고 선택할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고, AI가 제시한 정보와 근거를 검증하려면 오히려 더 공부해야 한다. 때로는 전공을 넘어 새로운 분야까지 공부 하게 된다. 일을 도와주는 치치가 오히려 나를 계속 공부시키는 셈이다. 무엇보다 최종 결과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요즘 나는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질문–기획–판단–책임’이라는 네 단어로 생각한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힘, 방향을 설계하는 기획력, AI의 답을 검증하는 판단력, 결과를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책임감이다. 이는 AI와 함께 공부하는 대학생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다.

사실 이 글도 치치와 함께 썼다. 경험과 생각은 내가 꺼내 놓았고, 치치는 정리하고 표현을 제안했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고칠지 판단했고, 때로는 “그것은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다시 쓰게 했다. 글의 방향과 최종 문장을 선택하고, 이 글에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사람도 나다.

25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나 역시 AI와 일하는 법을 배우는 학생이다. 모두에게 똑똑한 비서가 생긴 시대,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맡기느냐가 아니다. 스스로 어디로 갈지 정할 수 있는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가. 어쩌면 AI 시대의 공부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박현주 교수

(화학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