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wlett Packard | Senior Industrial Designer Jaekyu Jung 디자인학부 2004년 입학, 2011년도 졸업
일찍 정했던 목표.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하고 산업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대진학을 목표로 수능과 실기를 준비하였습니다. 고3때 응시했던 수능시험을 부진하게 보았고, 미대입시의 절반이 달린 실기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수능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면 화실에 가 장 먼저 도착하였고 가장 늦게 자정 12시에야 집에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세수를 하면 얼굴에 묻었던 검은 연필가루가 씻겨 나왔습니다.
기적 같았던 입학. 부단히 노력하며 준비했던 실기 덕분인지 2004년 기적같이 조선대 미대/디자인학부에 입학하게 됩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용무 차 들른 학과실에서 입시 성적을 보았습니다. 뒤에서 3번째에 위치한 제 이름을 보게 되었고, 비록 입학은 뒤에서 3번째로 했지만, 졸업할 때는 앞에서 3번째 안에 들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군 제대 후, 복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제품디자인. 누구나 그렇듯이 공모전에 나가고 싶어서 찾아본 국제 공모전들. 하지만 그 벽은 높았고 현실은 3d 소프트웨어 하나 다루지 못하는 갓 복학한 복학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3d cad는 할 줄 몰랐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독학으로 배워둔 포토샵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디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3d cad와 rendering에 공을 들이는 대신, 좋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 시간을 더욱 많이 사용했습니다. 결과는 조선대 미대 최초로 Red dot design award(3대 국제 디자인 공모전 중 하나)에 입상 하였습니다. 지레 스스로의 한계를 제한하고 포기하였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스카이 디자이너스 커뮤니티. 대학교 3학년 때, 각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들만 모인다는 스카이 디자이너스 커뮤니티에 지원을 하였고, 3차 면접에서 고배를 마시고 탈락하게 됩니다. 재학 시절 마지막 기회였던 다음해 4학년, 재차 지원하여 도전하였고, 최종합격하게 됩니다. 지방대 출신이라고 위축되고 싶지 않아 동계 프로젝트의 팀장을 자원하였고, 이어진 동계 프로젝트까지 총 1년의 인턴십 활동을 잘 마무리하였습니다.
팬택 신입사원. 1년간의 인턴십 활동의 종료 그리고 평가와 함께, 팬택에 정시채용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영어면접까지 요구하는 채용과정에 그 흔한 영어점수 하나 없이 지원하여 명문대학 출신들 동기들과 최종 합격하게 됩니다. 부족했던 부분들을 디자인 포트폴리오에 모두 쏟아냈고 이 같은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스무 살의 꿈이 현실로. 팬택에서의 약 3년여의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더 큰 도전을 향해 나아갑니다. 해외 취업을 위해 2013년도를 마지막으로 팬택을 그만두고, 새로운 포트폴리오 준비에 몰두하였습니다. 스무 살에 우연히 보게 되었던 실리콘밸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키워오던 꿈을 이루기 위해 몇 달간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다듬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다큐멘터리 속에 나왔던 하나의 회사가 hp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소셜 미디어에서 보게 된 채용공고에는 단 세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3년 이상의 경력, 디자인 포트폴리오, 영어로 의사소통 가능자. 앞의 두가지 조건은 충족되었지만, 이번엔 영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안 되더라도 물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하단에 적혀 있던 이메일로 문의 메일을 보냈고, 다음날 우선 포트폴리오라도 보내보라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준비해 오던 포트폴리오를 주어진 시간 내에 잘 마무리하여 보냈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뷰 요청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약 3차례의 인터뷰를 마치고, 최종적으로 HP Asia center가 있는 Taipei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쉽지 않았던 해외생활. 영어나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회사는 물론 퇴근 후의 일상조차 쉬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끼니를 때워야 했던 그 상황은 타지인 해외에선 그 외로움의 깊이가 더욱 크게 다가왔었고, 그래서 처음 한 달간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4~5개국의 엔지니어, 마케터들이 모인 컨퍼런스콜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행여 질문이라도 날아오면 로그아웃 후 30분 뒤에 메일을 보내 “인터넷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질문을 잘 못들었다. 메일로 다시 한번 이야기해달라.” 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프기도 했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밤을 꼴딱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콜업. 그렇게 대만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의 시간이 흐른 후, 디자인센터가 있는 휴스턴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국 외에 있는 지사에서 1년을 거주하였으니, 주재원 비자라고 불리는 L1 미국비자 취득자격 또한 갖춰졌습니다. 그렇게 약 반 년간의 비자 준비 과정을 거친 후 2016년 3월 그토록 꿈꾸던 미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비영어권 국가였던 대만에서 근무했던 1년 반의 생활은그리 큰 도움이 되진 못했습니다. 미국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하였고, 그중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수십 개의 미국 보험사에 매일 아침 전화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일인데, 다양한 인종과 성별 악센트에 익숙해질 수 있게 해줬던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미국 직장생활도 4년차로 접어듭니다.
실리콘밸리를 향해. 스무 살에 가졌던 실리콘밸리를 향한 꿈은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Q. 요즘 국내 취업시장에서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힘들다는 말을 듣다 보니까 해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혹시 해외로 취업을 원한다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나?
예를 들어서 디자인과의 기준으로 본다면 해외 취업을 할 때, 일단은 디자인을 하러 가는 거지 사실 뭔가 영어로 막 유창하게 설명을 하고 분석을 하러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실 디자이너로서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가장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예요. 자신의 대학생활 4년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자신이 해왔던 작업들, 어떤 프로세스들을 잘 녹여가지고 자신이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에 잘 맞춰서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언어적인 부분은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점수를 모으는 비실용적인 영어보다는, 내 의견을 좀 더 자유롭게 얘기 할 수 있고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회화위주로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미국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할 때 ‘토익 몇 점이에요?’ ‘텝스 몇 점이에요?’ 이런 식으로 묻지는 않거든요. 인터뷰를 바로 해요.
Q.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일단은 무언가를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뭔가 부족한 게 있더라도 자신이 가진 다른 장점이 있다면 저는 그런 장점이 약간의 결점을 커버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시도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어떤 일이라는 것은 시도하지 않으면 절대 발생하지 않는 것들이거든요.
또한 인턴십이나 멤버십 경험을 하지 못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3학년이나 4학년쯤에 지금 많은 기업들이 인턴십이나 멤버십제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미리 졸업을 하기 전에 실무도 해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들을 보강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