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연출을 맡은 네 번째 장편 예술영화 <프랑스여자>가 9월 ‘제8회 롯데 크리에이티브 공모전’에서 독립영화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앞서 <프랑스여자> (A French Woman)는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상영에 이어 8월 29일부터 9월 5일까지 개최됐던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초청 상영되기도 하는 등 개봉 전부터 연신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직 영화감독이 교수로 강단에 서는 일은 흔치 않다. 작품활동과 학사일정을 동시에 소화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희정 교수는 해내고 있다. 2007년 장편 데뷔작인 <열세 살, 수아> 이후, 최근 10년 동안 <설행_눈길을 걷다>,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프랑스여자>까지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들을 쏟아 내면서도 수년째 조선대학교 강단에 서고 있다.
조선대학교 대표 ‘슈퍼우먼’인 김희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예술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왕성한 창작활동, 작품세계,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문화예술계를 짊어지게 될 인재를 양상하는 교육자로서의 열정과 책임감에 대해 가감없이 들려 주었다.
Q. 먼저 영화 <프랑스여자>의 영화제 초청 상영과 수상을 축하합니다. <프랑스여자>는 어떤 영화인가요?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프랑스여자>는 파리에 유학 와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는 40대 후반의 ‘미라’라는 주인공이 프랑스인 남편과 막 이혼한 상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한때 예술가를 꿈꾸며 프랑스 땅을 밟았던 미라는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프랑스에서 중년을 맞이하게 되죠. 영화는 중첩된 시간의 지층을 방문한, 어느 한 무리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인 미라를 통해 중년 여성의 우울감과 감성을 그려내는 판타지입니다. 배우들의 출중한 내면 연기가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으니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듯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지난 영화들 <열세 살, 수아>, <설행_눈길을 걷다>,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을 보면 약자, 여성, 내면의 상처, 일상 등 공통된 키워드가 있는 것 같네요.
주인공으로 여성들이 많은 점은 제가 여성이라 여성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평소 ‘약자에 관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편입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은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에서 두드러지죠. 알코올중독자를 주인공(정우)으로 세웠으니까요.
더불어 어릴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감성을 지속적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제 자신이 서른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죽음’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또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내야 했던, 그 과정을 <열세살, 수아>에 담기도 했었죠.
Q.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주로 문학입니다. 영화감독이기 전에 극작가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또 즐깁니다. 사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고 나서 존경하는 소설가인 이승우 선생님과 신형철 평론가를 직장동료(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만나게 된 사실이 무척 기뻤습니다. 문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두 분의 실력과 명성을 아실 거예요.
영화 <프랑스여자>를 감독한 김희정 교수와 배우들이
전주영화제에 초청돼 행사를 진행하는 모습.
Q.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전세계 영화인들이 선망한다는 폴란드 우츠 국립 영화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시절과 유학시절은 어땠는지요?
대학시절 공부는 못했지만 감수성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예술을 전반적으로 좋아했습니다.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등……. 그래서 영화가 저에게 맞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든 예술을 하나의 장르에서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언제나 깨어 있으면 운과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믿어요. 우츠 영화학교에서 전세계에서 온 전도유망한 영화인들과 배우고 작업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조선대학교에서 존경하는 문학인들의 동료가 된 것도 저한테는 큰 행운이 따른 것이죠.
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은 최근 영화 <프랑스여자>에 나타납니다. 극중 미라도 예술가의 꿈을 안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죠. 프랑스에서 20년을 살게 된 미라는 프랑스와 한국, 어느 한쪽에서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경계인’입니다. 제가 유학시절 겪었던 감정의 형태도 그것이고요.
Q. 호남 지역과의 인연이 있으신지요? 서울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전남 진도 출신이에요. 돌아가신 후 진도에 있는 선산에 계시는데, 매년 인사드리러 진도를 방문합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3년 전 강사로 시작해 2년 전 교수가 됐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제작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가르치는 일을 좋아해 교수로서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전공은 영상문학입니다.
Q. 교육에 대한 철학으로 여기는 가치가 있나요?
영화 제작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현장을 강의하는 편 입니다. 학교가 광주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살아있는 현장을 경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사실이죠. 때문에 현직 영화감독인 제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제작 현장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전할 수 있고, 학생들도 이 점에서 호응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같이 작업했거나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배우들을 강사로 초청해 특강을 하기도 했었어요. 영화 <청포도 사탕>의 박진희씨가 우리 대학에 온 적이 있어요. 영화제 방문도 수업의 일환으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영화 <프랑스여자>가 초청 상영됐던 전주국제영화제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방문했었어요.
지난 10월 18일 열렸던 ‘개관 84주년 광주극장 영화제’도 물론입니다. 영화 <프랑스여자>가 개막작으로 선정돼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 김지영씨가 광주극장을 방문했습니다. 광주극장은 광주지역 예술영화를 이끌어가는 상징적인 공간이죠. 학생들에게 행사장에 방문해 예술영화도 보고 배우 김지영씨와도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제안했어요.
Q. 향후 행보는?
일단 교수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읽고, 보고, 연구할 책과 영화들이 무수합니다. 차기작도 준비 중이에요. <미래는 빛나는 별이다>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올해 안에 마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