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대학교가 광주를 넘어 호남을 대표하는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호남 지방의 완전한 종합대학을 세워 호남의 수재와 조선 각지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자는 생각(조선대학 설립동지회 입회 권유문)”으로 무등산 자락에 터를 잡은 게 1946년 9월이다.
무등산과 어우러진 조선대 본관 ‘백악’은 광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린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당시 하이다이빙 경기장이 조선대에 들어선 것도 전 세계로 중계될 TV화면을 고려해 결정됐다.
조선대에는 다른 대학에는 없는 특별한 ‘설립정신’이 있다. 1946년 조선대 설립동지회는 입회 권유문에서 “어느 대학보다 탁월한 교육기관이 되어 우리들을 이 곤궁하고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할 수 있는 민족 지도자를 수천, 수 만 명 양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지식인과 관리, 지주, 촌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각계각층 7만 2375명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다. 이렇게 탄생한 전국 첫 ‘민립대학’ 조선대의 벽돌 한 장, 나무 한 그루에는 이분들의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 있다.
올해로 개교 74주년을 맞는 조선대는 외형적으로도 호남을 대표한다. 조선대 동문은 20만 명이 넘는다. 18만여 명이 학사 학위를 받았고 석사 학위 2만 2000여 명, 4000여 명에게 박사 학위가 수여됐다. 조선대가 배출한 의사가 9000명에 이르고 약사도 5300여 명이나 된다. 교단에 선 사람도 5500여 명이다. 현재 재학생은 2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굳건할 것 같았던 조선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조선대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어도’ 광주·전남은 물론 호남에서 독보적인 사립대학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학생 충원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1988년부터 임시이사가 파견된 비정상적 체재였지만, 경영 공백이 커 보이지 않았다.
조선대는 2010년, 22년간 이어진 임시이사 체제를 끝냈다. 많은 사람들이 경영 정상화로 조선대가 미래를 준비하며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대학 경영의 최고 의결기관이었지만 이사들은 사사건건 반목했다. 결국 2017년 또다시 임시이사가 파견됐다. 학교 구성원들 간 내홍도 이어졌다. 2018년에는 교육부의 자율개선대학 선정에서 탈락하는 수모도 겪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빨라진 사회 변화 속에서 조선대는 10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잃었다. 조선대에 앞서 위기를 체감한 다른 사립대학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유학생을 유치했고 새로운 학과를 만들고 유사학과를 통폐합 하는 등의 구조조정에도 나섰다.
조선대는 올해 다시 정이사 체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민영돈 총장이 취임한 이후 내부 갈등도 빠르게 봉합됐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 구성원 모두가 조선대 설립에 나섰던 설립동지회의 입회 권유문의 한 구절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들은 황토로라도 담을 쌓고, 창호지로라도 문을 발라, 헛간으로 된 집에서라도 가르쳐서 우리 민족문화를 건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