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이영란의 차이나허스토리>
총관리자
2021-01-27
537
이영란의 차이나 허스토리
그림_최연희(만화·애니메이션학과)
조국인 한나라의 평화를 위해
흉노의 땅으로 떠나는 중국의 미녀 왕소군.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이영란 | 자유전공학부 교수
요즘 트로트 열풍으로 여기저기에서 트로트를 자주 듣게된다.
그 노래 가사 중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미와 덕을 사이에 두고 동양에서는 여성을 바라보는 기준을 미보다 덕에 두고자 하였다.
덕을 갖춘 여성, 즉 추녀이지만 덕과 재(才)를 겸비한 여성을 높이 평가하는 예가 많이 등장한다.
중국의 속담에도 “추한 아내와, 가까이 있는 밭은 집안의 보배”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국의 4대 미녀와 추녀 중 4대 미녀라 불리는 양귀비, 서시를
더 잘 알고 있다.
중국 4대 미녀가 모두 나라를 망친 여성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돋보이게 하는 이야기가 많다.
그녀들을 기억하는 이유가 나라를 망친 미녀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라를 망친 왕의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
그녀들이 유명해진 것일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침어 서시(侵漁 西施). 오나라에 패망한 월왕
구천의 충신인 범려가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쳤다. 결국 서시의 미색에 빠진 오나라는 멸망하게 되었다.
다시 서시를 찾은 범려는 서시에게 월나라로 돌아가자고 하였으나, 서시는 거절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부차와 오자서 두 남자를 마음에 두었으니 자신이 여기에서 생을 마감하겠다”며 떠난다.
왕소군(王昭君)은 흉노의 땅으로 떠나면서 비통한 마음을 비파로 연주하자, 기러기가 날개짓을 멈추고 떨어졌다고 하여
‘낙안 왕소군(落雁 王昭君)’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는 흉노와의 화친 조건으로 후궁을 보내야만 했고,
한의 원제는 화공이 그린 궁녀들의 초상화를 보고 아름답지 않은 궁녀를 바치기로 했다.
많은 궁녀들이 뇌물을 바쳐 화공을 회유했으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다.
화공은 왕소군의 초상화를 예쁘게 그려주지 않았고, 한의 원제는 초상화만 보고 왕소군을 흉노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왕소군이 떠나는 날 한원제는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흉노에게 보냈다. 왕소군은 흉노의 왕과 결혼해 왕자와 공주들을 낳았으며,
흉노의 땅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그녀가 있었기에 흉노와 한 왕조는 우호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초선(貂蟬)은 뒤뜰 화원에서 달이 그 미모에 움츠려져 구름 뒤로 숨었다고 하여 폐월(閉月)이라 불렸다.
초선은 지혜와 담력 그리고 희생정신으로 자신을 돌보아 준 왕윤에게 보답하는 여성 이야기로
전해진다. 그녀는 여포에게 선을 보여 첩이 되기로 약속한 후, 동탁의 첩으로 들어가서 여포를 화가 나게 한 다음,
둘 사이를 갈라놓아 여포가 동탁을 처리하게 만드는 계략, 즉 연환계(連環計)를 발휘했다.
양귀비가 양옥환(楊玉環)은 궁중에 들어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화원에서 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니
꽃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고 하여 수화(羞花)라 한다.
양귀비는 외모뿐만아니라 가무(歌舞)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한다. 양귀비는 처음 현종을 만난 연회에서 현종이 작곡한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하늘하늘한 노래)'의 악보를 보자마자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때때로 역사는 미녀들에게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책임을 지운다. 한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을
여성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맞지 않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월나라의 서시, 평화를 위해 눈물을 삼키며 조국을 떠났던 왕소군,
자신을 돌보아 준 이에 보답하기 위해 지략을 펼친 초선, 애절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보여준 양귀비까지…….
아름다움에 가려진 그녀들의 덕을 보고 ‘미녀’에 앞서 ‘재녀’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