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마친 청년들 앞에 던져지는 이 질문은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교육 불균형과 사회적 편견, 그리고 수도권 중심의 낙인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라는 이분법은 단순한 지리적 구분을 넘어서 대학의 위상뿐 아니라 청년의 자존감까지 재단하는 잣대로 작동한다.
하지만 ‘지방대’라는 이름 뒤에는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숨어 있다. 교육의 본질은 장소나 이름이 아닌 사람과 그가 쌓는 역량에 있다. 입지는 결코 능력을 대체할 수 없으며, 진정한 경쟁력은 콘텐츠와 실천에 달려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에는 전남대, 조선대, 광주교육대, 호남대, 동신대 등 10여 개 4년제 고등교육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190여 개 4년제 대학 중 물리적 숫자나 학생 수로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이들 대학은 치밀한 교육 실험과 지역 밀착형 혁신을 일구어내는 귀중한 ‘지적 생계’로 기능하고 있다.
전남대학교는 AI 융합 교육을 중심으로 디지털 전환 시대를 선도하고, 조선대학교는 바이오메디컬 분야 특성화를 통해 의료·의료 산업과 긴밀히 연계한다. 동신대와 순천대 역시 신재생에너지, 농생명 산업 등 지역 특화 산업과 결합한 실무 중심교육을 확대 중이다.
이처럼 지방대학은 단순한 학문 연구처가 아니라 지역 사회 문제 해결의 실험장이자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곳에서 길러진 인재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때, 청년은 지역을 살리고 지역은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된다.
문제는 여전히 사회가 이들에게 씌우고 있는 왜곡된 인식이다. “지방대는 수도권 명문대의 예비번호에 불과하다”라는 편견은, 구조적 불평등의 발현이다. 대학의 명칭이 청년의 자존감에 직결되는 이 냉혹한 구조는, 결국 수많은 가능성의 싹을꺾는 자가 검열로 이어진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학벌보다 실력, 인맥보다 문제해결력, 권위보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이제는 지역대학 출신 청년들이 자신만의 ‘독창성’과 ‘실용성’을 무기로 경쟁의 최전선에 당당히 나서고 있으며, 이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방향이다.
실제로 광주·전남 지역의 대학들은 지역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지식 실천의 전진기지로 진화하고 있다. 전남대학교는 AI융합대학과 지역혁신선도학과를 통해 디지털전환 시대를 선도하고 있으며, 조선대학교는 바이오메디컬 분야의 특성화를 통해 의료·헬스케어 산업과의 유기적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동신대학교와 순천대학교 역시 각각 농생명,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실무 중심 교육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과의 밀착 협업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처럼 지역대학은 지역 생태계 전반에 작동하는 ‘혁신의 허브’이자 ‘사회적 자본’이다. 결국 ‘지역을 바꾸는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 곧 ‘지역을 살리는 일’이며, 이는 구호가 아닌 실질적 국가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방은 결코 수도권의 그림자가 아니다. 지방대학은 새로운 해법과 혁신의 실험장이자, 대안적 미래의 전초기지다. 그 중심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청년들은, ‘지방대생’이라는 낡은 프레임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로컬 히어로(Local Hero)’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시선이다. 여전히 많은 지방대 재학생들이 자신을 ‘차선책’으로 여기며, 가능성의 날개를 접는다. 아무리 우수한 커리큘럼과 실습 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도, 사회의 인식이 전환되지 않는 한 그 효과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지역대학의 기능을 재정의하려면 교육의 질 향상과 더불어 사회적 인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이제는 국가와 지방정부, 산업계가 함께 손을 맞잡고, 지역대학을 ‘지역혁신의 플랫폼’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교육, 일자리, 창업, 문화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지역으로 재편할 수 있다.
지역대학이 바로 서야 지역이 바로 선다. 지역이 강해져야 국가가 지속가능하다. 지방대는 경쟁력이며, 청년은 곧 미래다. 그러니 이제 질문을 바꾸자. “어느 대학 나왔니?”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니?”라고. 그 물음이 바뀌는 순간, 대한민국의 교육은 비로소 지역과 미래를 함께 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