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도와 치의학도 학생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환자'는 차가운 실습대 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생명의 경외감을 배우는 가장 뜨거운 강의실입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누군가의 전부였던 삶.
시신 기증자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몸을 기증하는 실천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받는 고통과 두려움에서 조금씩 평안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고인의 마지막 뜻을 존중하여 가장 힘든 이별을 견뎌내는 유가족의 희생은, 시신기증이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말해줍니다.
그분들의 용기 있는 결정은, 내일의 인재를 길러내는 의학교육의 토대입니다.
올해,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시신기증자 합동추모식’에는 더욱 특별한 울림이 퍼졌습니다. 18분의 위패가 모셔진 단상에는 고인들의 생전 아름다운 모습이 사진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이 가운데 평생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故 김양옥 교수(예방의학)와 故 문정석 교수(해부학)는 생의 마지막 순간, 제자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증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조선대 의대 교수로는 최초의 시신기증 사례로 기록된 이 결정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증명한 마지막 강의였습니다.
조선대학교는 기억하겠습니다. 우리가 길러내는 의료 인재들이 만나는 모든 생명 속에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좋은 의사가 되어달라” 당부했던 기증자분들의 숭고한 뜻이 함께하고 있음을.........
문정석 교수님께
해부학교실 정윤영 교수의 「문정석 교수님을 기리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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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이란 긴 시간 동안 우리 조선의대 해부학교실에서 제가 해부학 교수로 해부학교육을 하며 교수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며 살아가게 해주신 시신기증자 분들이야말로 실로 진정한 저의 스승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해부학교육에 최선을 다해왔던 저의 마음을, 그리고 그 분들처럼 실천의 길을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을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면에 제 자신을 돌아보며, 선생님과 저희들이 살아왔던 그 길이 돈과 이익이 아닌 오직 교육과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위한 세상을 꿈꿔왔기에 남은 동안에도 선생님 뜻에 따라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생님, 부디 저편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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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린 의학도 치의학도 여러분은 누군가의 죽음과 대가 없는 희생정신, 그 소중한 분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고 서러운데도 불구하고 그 유언을 존중하여 시신을 기증하는데 동의하신 가족분들의 아픔과 함께 의사 치과의사가 되고자 꿈과 희망을 품는 역설적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 복잡한 상황이 여러분의 갈 길을 결정해줄 것이며 두고두고 인생의 명제가 되길 바랍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여러분의 진정한 선생님이십니다.
2026. 1. 20. 제자 정윤영 올림
김양옥 교수님께
예방의학교실 류소연 교수의 「김양옥 교수님을 기리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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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늘 옳다고 믿는 길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셨습니다. 누구보다 원칙을 중시하시고,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자세로 학문과 제자들을 이끌어주셨습니다. 때로는 엄격하시고 고지식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고, 그러한 결정이 교수님 인생을 소란하고 고생스럽게 만들지라도 그 이면에는 진심 어린 애정과 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깊은 뜻이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학과 교육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증하시며, 숭고한 헌신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선택은 단순한 결단이 아니라, 살아있는 강의이자 마지막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교수님의 뜻은 수많은 학생들에게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의학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교수님, 긴 세월 동안 고생 많으셨고, 그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시간 속에서 보고 배운 모든 것이 제 인생의 여정에서도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기길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
2026. 1. 20. 제자 류소연 올림
기억하겠습니다. 기증하신 당신의 숭고한 이름을.
故 박진삼 님, 故 박남신 님, 故 이시환 님, 故 김순례 님, 故 김창진 님,
故 신정식 님, 故 윤용옥 님, 故 정재필 님, 故 유기향 님, 故 박정숙 님,
故 문정석 님, 故 임병무 님, 故 노병덕 님, 故 김은숙 님, 故 정동기 님,
故 김양옥 님, 故 조병현 님, 故 김정웅 님.
2024년 6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시신을 기증해 주신 18명의 기증자와 유가족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