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 이후 2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입양되었다. 한국은 해외 입양의 흐름을 제도화하고 산업화했던 선구적인 나라이다. 한국 전쟁 고아와 미군 혼혈아에 대한 해결책으로 도입되었던 해외입양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최고치에 달했다. 당시 해외입양은 한국에서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것으로 홍보되었다. 즉, 한국에서 제대로 존중받기 어려운 혼혈아, 장애인, 미혼모 아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선한 행위라는 것이다. 당시 언론은 서구 입양국가를 교육, 의료 시설, 인권의식이 발달한 이상적 국가로 찬양했고, 전국의 고아원과 입양 기관은 해외 입양에 보낼 아이들을 제공하는 공급책 역할을 했다. “그후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책처럼, 초국가적 이주 이후 입양인들의 삶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다.
작년 10월 <광주-전남 출신 스웨덴 입양인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스웨덴으로 보내졌던 이들이 입양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웨덴은 미국에 이어 가장 많은 아이들이 이주했던 나라이다. 1960년대 말부터 대한양연회(현 한국사회복지회)의 광주 지부는 해외입양으로 선정된 아이들을 전부 스웨덴으로 보냈다. 어떠한 경위로 광주에서 스웨덴으로의 입양 흐름이 만들어졌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스웨덴에 거주하는 한국 입양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광주-전남 출신이다. 간담회 참석자들은 모두 1960-70년대 대한양연회를 통해 스웨덴으로 이주했던 여성들이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스웨덴에서 ‘광주 모임’을 운영하며, 광주 방문 여행을 준비했다. 나는 해외입양 연구를 하면서 만났던 스웨덴 학자(그 역시 한국 해외입양인으로, 비판적 입양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이다)의 부탁으로, 이들의 광주 방문을 돕게 되었다. 방문 기간동안 이들은 광주 지역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광주 지역 사람들(시민단체, 입양 관련 담당자, 일반 시민들)과 만나서 해외입양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광주 방문 전, 나는 몇 달 동안 지역 시민단체나 관련 기관에 연락을 해보았지만, 한결같이 해외입양에 대해 잘 모르고, 입양인들과 만나는 것도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간담회는 입양인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을 지역 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간담회는 광주-스웨덴 해외입양의 역사와 현황 등에 대한 짧은 강연과 스웨덴 해외입양인들의 영상 5개로 구성하였다. 영상은 입양인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영어로 말한 것을 한국어로 자막 작업을 해서, 청중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영상 속에서 이들은 백인 사회로의 편입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말했다. 이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였다. 1960년대 말 이주한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이상한 새’로 인식했다고 한다. 백인 사회와 가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은 없었고, 처음 식당에서 마주한 한국인 가족을 보고 “지구상에 나와 같이 생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처럼 해외입양은 물리적 거리와 법적 단절을 통해서 입양인들의 입양 전 과거와 연결을 지웠다. 또 다른 입양인에 따르면, 지워진 과거와 역사는 이들의 삶에 “커다란 구멍”으로 남아있다.
이들의 광주 방문은 ‘커다른 구멍’을 조금이라도 채우고자 하는 시도였다. 경찰서, 입양기관, 고아원 등을 방문하여 자신들의 입양 전 삶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했지만, 입양 문서에 남은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특히 언어 문제로 인하여 입양인들 혼자 방문하거나 문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지난 몇 년 동안 주요 입양 국가들이 한국으로부터의 입양 과정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2021년 네덜란드, 2024년 덴마크, 2025년 스웨덴과 노르웨이 정부는 입양 과정에서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보고서를 내었다. 한국에서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작년 3월 해외입양 과정에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책무를 방기했음을 인정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2029년까지 해외입양을 끝내기 위해 준비 중이고, 아동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서 입양에 대한 책임을 사설 입양기관에서 정부로 옮기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과거 입양 과정의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중요한 한 걸음이다. 그러나 해외입양인들의 잃어버린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입양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졌는지에 관한 진실을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들의 입양 과정이 시작되었던 지역 사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전국에서 모집되었던 20만 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잃어버린 역사는, 이들이 태어난 지역의 구체적인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비로소 되살릴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단체와 전문가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역 대학이 공동체 회복을 위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무이다.